다이버 워치, 근데 이제 컴플리케이션을 곁들인
언제까지 베젤만 돌릴 셈인가! 컴플리케이션 다이버 워치로 즐기는 더 깊고 넓은 세계.
- 이상우
- 2025.03.26

지금 내 앞에는 다이버 워치가 있다. 이 녀석은 외골수다. 어지간해선 다른 기능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마치 어떤 컴플리케이션도 자기 안에 들어오지 말라는 듯 크라운을 꽉 잠가버린다. 가끔 크로노그래프 기능이 구색을 맞추기 위해 슬쩍 비집고 들어갈 뿐이다. 물속에서는 절대 푸셔를 누르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다이버 워치의 얘기를 들어보면 나름대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자기는 다이빙을 위해 태어났으니 물속에서 쓰지 않을 기능은 굳이 넣을 필요가 없단다. 오히려 방수 성능과 시인성만 떨어트린다나 어쨌대나.
아! 그렇구나. 그래서 네 주인은 매일 사무실에서 하염없이 베젤만 돌리고 있구나. 강력한 방수 성능을 위해 시계가 멈출 때마다 크라운을 힘겹게 풀고 잠그면서. 뭐, 야근할 때 정전이 되면 야광 성능이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네 주인이 폭음을 해서 다음날 손목이 부었을 때 다이버 익스텐션 기능을 쓸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네가 컴플리케이션을 굳이 마다할 이유는 될 수 없는 것 같아.
다이버 워치는 내 말을 듣기 싫다는 듯이 아예 귀까지 단단히 잠가버렸다. 이런, 시계가 주인을 쏙 닮았구먼. 완벽한 방수, 아니 방음 기능이다.
다이버 워치의 넋두리처럼 이 장르에는 다양성이 여전히 부족하다. 아무 시계에 적당한 방수 성능과 야광, 단방향 회전 베젤만 붙이면 다이버 워치가 된다. 디자인만 조금씩 다를 뿐 뭘 선택해도 큰 차이가 없다. 베젤이 움직이는 방수 툴 워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게 다 섭마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당장 깊은 물속에서 생존하기도 벅찬데 무슨 퍼페추얼 캘린더로 날짜를 확인하거나 투르비용 따위를 감상하겠나. 시계의 본래 목적에 맞지 않다는 거 나 역시 알고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미 기계식 시계 자체가 원래 용도에서 한참을 벗어난 마당에 우리가 다이버 워치에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만.
그래서 준비했다. 다이버 워치, 근데 이제 강력한 컴플리케이션을 곁들인 녀석들을. 이제 우리 데스크 다이버들도 쉬는 시간에 베젤만 돌리지 말자. 가끔은 알람 소리도 듣고, 문페이즈나 투르비용도 좀 감상하자는 거다. 아무도 없는 각자의 심해에서.
항상 궁금했다. 복잡한 캘린더 기능은 왜 죄다 드레스 워치에만 있는가? 다이버 워치에 캘린더와 문페이즈가 있으면 안 되는 걸까? 바다에서도 하늘의 달에 안부를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 시계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 누구보다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피프티 패덤즈 바티스카프 컴플리트 캘린더다.
사실 2018년 처음 스틸 모델이 등장했을 때만해도 이렇게까지 라인업이 크게 확장될 줄은 몰랐다. 다이버 워치가 왜 이렇게 복잡하냐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복잡함은 오히려 특별함이 되었다. 2022년 레드 골드 모델과 티타늄 모델이 등장하더니, 2024년에는 풀 세라믹 모델과 풀 레드 골드 모델까지 추가되었다.
바티스카프는 오리지널 피프티 패덤즈를 보다 심플하고 간결한 디자인으로 재해석한 다이버 워치다. 컬렉션 내에 여러 세부 모델들이 있는데, 개성 있는 다이버 워치를 원한다면 이 컴플리트 캘린더 모델이 제격이다. 다이버 워치의 기본 미덕은 단순한 다이얼과 가독성. 하지만 이 시계는 그런 고정관념 따윈 바다 속 깊은 곳에 파묻어버렸다. 다이버 워치 중에서 이보다 복잡한 다이얼을 찾기 어려울 만큼 각종 인덱스와 인디케이터가 빼곡하다.
물론 시인성은 다소 떨어진다. 허나 어차피 대부분의 시간을 물 밖에서 보낼 테니 그것보다는 캘린더 기능과 문페이즈의 감성을 챙기는 게 좋을 것 같다. 바티스카프의 화려한 세라믹 베젤과 빌레레의 우아한 컴플리트 캘린더가 만들어내는 조합은 낯설지만 볼수록 매력적이다. 혹자는 끔찍한 혼종이라고 비아냥거리지만 이건 혈통이 다르다. 그리고 돌연변이가 새로운 진화의 역사를 열었다는 걸 기억하자.
캘린더 기능으로 인해 케이스 측면에 조정 버튼이 추가되었지만 300m 방수 기능은 포기하지 않았다. 거친 다이버 워치 느낌과 상반되는 위트 있는 달 표정도 매력 포인트. 빌레레 컴플리트 캘린더의 기능과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만 평소 착장과 라이프스타일 때문에 선택하지 못했던 사람에게는 분명 반가운 모델일 것이다.
아무도 없는 바다 속에서 홀로 투르비용을 감상하고 싶은가? 그런 당신에게 리차드 밀의 RM 025 투르비용 크로노그래프 다이버 워치를 채워주고 싶다. 이 타임피스는 투르비용과 크로노그래프 컴플리케이션, 그리고 토크·기능 인디케이터와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까지 갖췄다. 바다에 전부 가져가기 부담스러울 만큼 차고 넘치는 기능이다. 시계 내부의 수많은 부품을 보고 있노라면 커다란 50mm의 케이스조차 비좁게 느껴진다.
손목이 얇은 동양인에게 자비 없는 사이즈이지만 그리 무겁지는 않다. 케이스와 회전 베젤을 티타늄으로 제작했고, 무브먼트의 베이스 플레이트에도 카본 나노 섬유 신소재를 사용한 덕분이다. 러그에는 레드 골드 소재를 적용해 투박함 속에서도 고급감을 추구했다. 리차드 밀 워치답게 완벽한 케이스 피니싱을 자랑하며, 정교한 스플라인 스크루 역시 브랜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회전 베젤은 푸셔를 눌러야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해 오작동 가능성을 원천봉쇄했다.
주목해야 할 건 케이스의 형태다. 대부분의 리차드 밀 시계는 토노 형태를 띠지만 RM 025는 유독 ‘라운드 형태’를 고집한다. 생명과 직결된 다이빙에 사용하는 시계인 만큼 가독성이 뛰어나고, 제어장치 조작이 편리해야 한다는 ‘기능’에 충실한 결과다. 덕분에 원형 시계임에도 리차드 밀 시계 중 가장 개성 있는 시계가 되었다. 기능, 브랜드, 가격 등을 고려하면 다이버 워치의 ‘끝판왕’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기계식 시계에서 차임 메커니즘은 꽤 고급 기술에 속한다. 특히 시간을 소리로 알려주는 미닛 리피터는 엄청난 몸값을 자랑한다. 하지만 단지 ‘소리’만 원한다면 훨씬 현실적인 대안이 있다. 바로 기계식 알람시계를 구입하는 것. 그리고 그런 당신이 찾아가야 할 곳은 예거 르쿨트르 부티크다. 메종은 기계식 알람 메커니즘의 선두주자로, 현재 폴라리스 마리너 메모복스 모델에서 그 역사적인 기술을 마주할 수 있다.
폴라리스 마리너 메모복스는 예거 르쿨트르가 1968년 제작한 기계식 알람 다이버 워치를 계승하는 모델이다. 타이머를 설정하면 물속에서 소리와 진동으로 경과 시간을 알려주는데, 당연히 일상생활에서도 굉장히 유용하다. 예를 들면 기계식 차임 소리를 들으며 컵라면이 ‘이븐하게’ 익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업무 중 잠시 명상에 빠져들 때도 좋은 기능이다. 내면 깊숙한 곳까지 잠수했더라도 청각과 촉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차임 메커니즘이 당신을 현실의 수면 위로 인양해줄 것이다.
유니크한 기능 못지않게 디자인 면에서도 개성이 넘친다. 이너 베젤을 적용해 다이버 워치의 DNA를 유지하면서도 깔끔한 외형을 구현했고, 그러데이션 처리된 블루 래커 다이얼은 사용자를 심해로 안내한다. 3개의 크라운도 전문가용 툴 워치의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ISO 6425 기준을 충족하는 본격 다이버 워치지만 슈트에도 잘 어울리는 세련미를 갖췄다. 과연 리베르소와 마스터울트라씬의 예거 르쿨트르다. 이게 드레스 워치의 명가에서 빚어주는 다이버 워치의 맛이지!
‘강력한 야광 성능’은 다이버 워치의 증명 서류에 반드시 포함되는 문구다. 오래 전 파네라이는 이탈리아 해군에 작전용 시계를 납품하면서 특별한 야광 기술을 터득했다. 바로 ‘라디오미르’와 ‘루미노르’라는 이름의 발광 물질이다. 샌드위치 구조의 다이얼에 머물렀던 희미한 빛은 전쟁 중 이탈리아 해군 병사의 삶과 죽음 사이에도 샌드위치 재료처럼 포개져 있었을 거다. 그리고 파네라이는 그 역사의 샌드위치 조각을 되살려 빛나는 럭셔리 워치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강력한 발광 성능은 파네라이 워치의 상징과도 같다. 그리고 최근에는 ‘빛’을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를 컴플리케이션으로 구현했다. 섭머저블 이룩스 랩-아이디(PAM01800) 안에는 특별한 기술이 숨어 있다. 케이스 내부에는 6개의 배럴이 있는데 이 중 4개의 배럴로 초소형 발전기를 돌려서 최대 30분까지 인덱스와 핸즈에 빛을 공급할 수 있다. 6개의 배럴을 감아주기 위해 일반적인 로터보다 훨씬 무거운 로터를 썼다고 한다.
사실 전기에너지를 만드는 것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다. 진짜 문제는 이 에너지를 시계의 각 구성 요소에 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회전 베젤의 LED를 밝히려면 전기에너지를 케이스와 완전히 분리된 베젤까지 전달해야 한다. 게다가 베젤은 한 방향으로 계속 회전해야 하고, 시계의 방수 성능은 500m에 이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네라이는 여러 개의 개스킷과 특수한 튜브를 설계했다. 베젤이 회전하는 방향에 맞춰 아래쪽 튜브에서 빛이 발광하도록 한 것. 회전하는 시침과 분침 역시 마찬가지다. 전선을 사용하면 반드시 엉켜버리기 때문에 각 요소를 특별한 형태로 설계했다. 마치 쿼츠 시계의 라이트처럼 평범하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기술적 성취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그 과정은 기계식 시계를 만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시간’이 아닌 ‘빛’을 구현할 뿐.
어린 시절, 밤에 자전거를 탈 때는 앞바퀴의 작은 발전기를 돌려 불을 밝혔다. 지금의 LED 조명처럼 밝진 않았지만 직접 발을 굴려 만들어낸 그 빛에는 차가운 밤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어떤 온기 같은 것이 있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직접 로터를 회전시켜 만들어내는 빛이라니. 혹시라도 이 시계를 구입한다면 밤에 자전거를 타면서 발광 스위치를 눌러보고 싶다. 빛나는 30분 동안, 따뜻한 온기 같은 것이 나와 시계 사이에도 나타날 것만 같다.
흔치 않지만, 세상에는 다이버를 위한 퍼페추얼 캘린더 시계도 존재한다. 물론 그 중에는 퍼페추얼 캘린더의 대가 IWC의 작품도 있다. 2023년 IWC는 영화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 개봉에 맞춰 아쿠아타이머 퍼페추얼 캘린더 디지털 데이트-먼스 한정판을 출시했다.
장르 자체가 다른 만큼 주력 모델인 포르투기저 퍼페추얼 캘린더와는 다른 무브먼트를 사용했다. 칼리버 89802는 4개의 디스크를 사용해 월과 일을 디지털 방식으로 표시한다. IWC가 1884년 제작한 폴베버(Pallweber) 워치의 기술과 헤리티지를 응용한 것. 물론 퍼페추얼 캘린더 워치라서 2100년까지 별도 수정이 필요 없으며, 6시 방향에서 윤년 표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정도로 큼직한 아라비아 숫자라면 물속에서도 날짜를 확인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겠다. 부득이하게 28일이나 30일 자정 무렵에 다이빙을 해야 하는 사람도 안심하고 입수할 수 있을 것 같다. 물속에서 날짜 조정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크로노그래프 기능도 탑재하여 12시 방향 서브 다이얼에 30분 카운터와 12시간 카운터를 동시에 보여준다. 회전 베젤로 가늠할 수 없는 긴 시간을 계측할 때 유용하겠다.
케이스는 티타늄 소재에 블랙 세라믹을 증착시킨 세라타늄Ⓡ 소재로 제작해 가볍고 내구성이 탁월하면서도 스크래치에 강하다. 영화 속 캐릭터에서 영감을 받은 레드 버전과 블루 버전 두 가지로 선보인다.
나는 잠겨 있던 다이버 워치의 크라운을 풀었다. 닫혀 있던 귀가 천천히 열렸다. 알겠지? 이제 너도 너만의 컴플리케이션을 좀 찾아보렴. 하지만 제 주인은 그런 기능을 추가할 여유가 없어요. 그는 아주 평범한 다이버랍니다. 얕은 바다에서 산소통도 없이 숨을 참아가며 매달 월급을 채취해오죠. 나는 잠시 모든 다이버의 숭고한 노동을 상상했다. 그래, 언젠가 네 주인도 더 깊은 곳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날이 올 거야. 억지로 숨을 참을 필요도 없겠지. 그때는 꼭 오늘 내가 들려준 이야기를 기억해주렴. 나는 중고장터로 향하는 녀석의 베젤을 제자리로 천천히 돌려주었다. 딸깍, 딸깍. 서로 다른 시간이 쇳소리를 내며 힘겹게 맞물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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