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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딱이거나 흔들리거나

똑딱인다는 건 흔들린다는 거다. 계속 흔들리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 이상우
  • 202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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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딱이거나 흔들리거나

가끔 ‘시계’나 ‘시간’이라는 키워드로 신간 도서를 검색할 때가 있다. 애호가이자 직업인으로서 시계에 대한 지나친 관심 때문인데,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좋은 책을 만나곤 한다. <1초의 탄생(A Brief History of Timekeeping)>도 그렇게 만났다. 저자 체드 오젤은 이 책에서 인류가 수 세기에 걸쳐 시간의 흐름을 측정해온 역사를 정리했다. 

체드 오젤, <1초의 탄생>

시간의 개념이나 역사를 다룬 책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사이먼 가필드의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나 알렉산더 데만트의 <시간의 탄생> 같은 책들이 대표적이다. <1초의 탄생>에서는 ‘측정’이라는 행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전한 과학 기술에 초점을 맞췄다. ‘해시계부터 원자시계까지’ 모든 시간 측정의 역사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한 것도 대단하지만 내가 눈여겨 본 것은 시간 측정을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이었다. 저자는 모든 시간 측정 장치가 본질적으로 ‘똑딱이는 물건’이라고 정의한다. 

시계 애호가들에게 익숙한 기계식 시계의 밸런스 휠 진동, 원자시계에 사용되는 초당 90억 회의 전자기파 진동, 지평선에 떠오르는 태양의 위치가 주기적으로 바뀌는 것까지. 똑딱인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표시하고 측정하는 데 사용되는 정기적이고 반복된 움직임”을 의미한다. 즉 모든 시계에는 실질적이든 은유적이든 ‘똑딱임’이 있으며, 우리는 “어떤 두 가지 사건 사이에 똑딱임이 몇 번 발생했는지 세어서 시간의 흐름을 측정한다”는 것이다. 결국 시계, 혹은 시간 측정의 역사란 “시간의 흐름을 사람이 알아보기 쉽게 표시해서 오류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온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왜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려고 했을까? 본질적으로는 세계의 흐름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시간의 흐름을 측정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이 계절의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으며, 미래에 어떤 계절이 다가올지 예측할 수 있다. (시간의 신 크로노스는 농경의 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시간이라는 것은 보이지도 않고 붙잡아둘 수도 없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시간은 현재를 끊임없이 과거로 만들면서 무심히 제 갈 길을 간다. 이 종잡을 수 없는 녀석에게 시계는 손을 내민다. 그리고 똑딱임을 통해 시간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똑딱임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것은 시간 측정을 위한 반복적 현상인 동시에 시간과 세계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영국의 스톤헨지 유적. 이것 역시 똑딱임을 가진 거대한 시계다. ⓒ David Goddard / Getty Images

모든 시계는 똑딱이는 물건이다.
똑딱인다는 건 흔들린다는 것
  • 오메가, CK859

  • 몽블랑, 1858 지오스피어

고요한 밤, 시계를 귀에 가져가면 똑딱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무브먼트에 따라 소리가  제각각인데 내 컬렉션 중에서는 오메가의 CK859와 몽블랑의 1858 지오스피어가 가장 크고 또렷한 소리를 들려준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똑딱임의 박자가 미묘하게 다르다. 두 시계의 진동수가 다른 탓이다. CK859는 3.5Hz(시간당 25200회 진동), 지오스피어는 4Hz(시간당 28800번 진동)다. 그래서 지오스피어가 CK859보다 소리의 간격이 좀 더 촘촘하다. 케이스 재질이 브론즈이기 때문인지 케이스 내부에 공간이 많아서인지 모르겠으나 소리 자체도 지오스피어 쪽이 좀 더 크고 우렁차다. 모두 같은 시간을 표시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자신만의 똑딱임이 있는 셈이다. 

어쨌거나 시간 측정의 근간이 되는 똑딱임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다는 건 기계식 시계만의 매력 포인트다. 수정 진동자로 구현되는 초당 3만 2,768번의 진동은 인간의 감각기관으로는 느낄 수 없으니 말이다. (쿼츠 시계는 이걸 1초씩 샐 수 있도록 속도를 늦춘 것이다) 1초에 91억 9,263만 1,770번 진동하는 원자시계의 전자기파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내는 ‘1초’는 이렇게 다양한 ‘똑딱임’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밸런스 휠과 헤어 스프링 ⓒ A. Lange & Söhne

기계식 시계의 경우, 이 똑딱임을 만들어내는 핵심 부품은 밸런스 휠, 헤어스프링, 그리고 이스케이프먼트(탈진기)다. 이스케이프먼트는 메인 스프링에서 한꺼번에 풀려나오는 힘을 제어해 일정하게 풀릴 수 있도록 하며, 이때 헤어스프링과 연결된 밸런스 휠이 좌우로 움직이면서 그 속도를 조율한다. 가끔 시스루 백 너머로 밸런스 휠의 움직임을 멍하게 바라볼 때가 있다. 이른바 ‘시멍’을 때리는 것인데, 내게는 밸런스 휠의 움직임이 마치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똑딱인다는 건 결국 흔들린다는 게 아닐까. 

 

대체로 흔들린다는 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위태롭거나 불안정한 상태를 지날 때 우리는 흔들림을 감지한다. 하지만 모든 존재는 흔들리면서 균형(밸런스)을 잡고 앞으로 나아간다. 시계의 초침이 미래를 향해 계속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끊임없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시계도 인간도 흔들리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러니 삶이 흔들리더라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그럭저럭 잘 흘러가고 있다는 증표이기도 하니까. 

시계도 인간도 흔들리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자신만의 똑딱임을 찾아가는 삶

이자벨 미뇨스 마르틴스, <시간이 흐르면>

사실 시간의 흐름은 시계가 없어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체력이 줄어들고, 주름이 늘어가고, 기억이 희미해지니까. 소멸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면서 우리는 문득 시간의 흐름을 깨닫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이라는 그림책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우리는 흐르는 시간을 볼 수 있어. 모든 것들이 점점 사라지거든.”

시간의 흐름을 표시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몸도 하나의 거대한 시계다. 심장의 박동, 그리고 들숨과 날숨으로 반복적인 똑딱임을 만들어낸다. 각자 자신만의 진동수로 똑딱인다.

돌이켜 보면 20대의 나는 제니스 엘 프리메로 무브먼트에 버금가는 고진동이었다. 너무 많이 흔들렸고, 늘 정확해지기 위해 애썼다. 윤활 기술도 변변치 않아서 마음의 부품은 자주 마모되고 어긋났다. 몇 번의 오버홀을 거쳐 50대를 바라보는 지금은 진동수를 꽤 낮췄다. 예전보다 조금 느리게 움직이고 적게 흔들린다. 정확해야 한다는 강박도 버렸다. 모두가 똑같은 표준시에 맞춰 살 필요는 없으니까. 조금 늦어도 내 시간을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은 것 같다. 

사실 시계에서 중요한 건 똑딱임의 속도가 아니다. 그 똑딱임이 ‘일정하게 반복’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때로는 지루할 수도 있지만 예측 가능한 흔들림 속에서 나와 내 가족들이 안정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 내게 좋은 무브먼트란 어떤 상황에서도 버텨내고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무브먼트다. 그런 무브먼트가 대부분 정확했고 대체로 아름다웠다. 꾸준하고 일정한 반복의 힘, 똑딱임의 힘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맞는 진동수가 있다. 그걸 찾아내고 조정하면서 우리는 더 안정적인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워치메이커는 아닐지라도 인생의 오버홀 기술 정도는 배워둬야겠지.

제니스의 고진동 무브먼트 엘 프리메로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맞는 진동수가 있다. 그걸 찾아내고 조정하면서 우리는 더 안정적인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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