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스토리] 불가리](https://www.klocca.com/wp-content/uploads/2025/03/메인.webp)
시계 시장에서 시계를 비롯해 주얼리, 패션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토털 브랜드의 약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계 제조라는 높은 허들을 넘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은 이들은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끝에 워치메이커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일부는 결실을 맺는 것을 넘어 시계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기까지 했다. 이탈리아 로마의 유산을 간직한 불가리가 그러하다. 오랜 역사를 지닌 유수의 시계 제조사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시계 제작에 매진한지 고작 수십년 밖에 채 되지 않은 불가리는 어떻게 주목받는 브랜드가 되는 것을 넘어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울트라씬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을까? 지금부터 불가리의 여정을 살펴보자.
불가리의 창업주인 소티리오 불가리는 1857년 그리스 북서부에 위치한 에피루스의 작은 마을 파라미티아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비잔틴 시대부터 은세공으로 유명한 지역이었으며, 그리스-로마와 동방의 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양식과 예술 사조가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11명의 형제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였던 소티리오 불가리는 가업을 이어 은세공사가 된다. 소티리오 불가리는 아버지의 공방에서 은으로 만든 장신구를 비롯해 벨트 버클 따위를 제작하며 기술을 연마했다. 187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파라미티아가 쑥대밭이 되자 소티리오 불가리는 가족들과 함께 수년간 그리스와 알바니아 일대를 떠돌았다. 불안한 정세 속에서도 불가리 가문은 굴하지 않고 사업을 이어 나갔다. 약 4년간의 방황 끝에 소티리오 불가리는 전화가 미치지 않은 그리스의 코르푸섬에 정착했다. 평화로운 코르푸섬에서 공방을 연 소티리오 불가리는 이윽고 마케도니아 출신의 금세공사 드미트리오스 크레모스와 조우한다. 서로를 알아본 둘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1880년 이탈리아 나폴리로 떠났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두 세공사의 명성은 금세 나폴리에 퍼졌다. 사업은 성공적이었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폴리의 공방은 절도와 강도 사건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허망하게도 나폴리로 이주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두 사람은 모든 것을 잃었다. 소티리오 불가리의 수중에는 고작 80센트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돈과 기반은 잃었으나 꿈만은 잃지 않았던 24살의 젊은이는 동업자와 다시 한 번 의기투합하여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로 향했다. 무일푼이었던 그들은 포폴로 광장이 보이는 핀초 언덕에서 금속 공예품을 판매했다. 허나 문제가 발생했다. 허가를 받지 않아 판매 금지 조치를 당했던 것이다. 이에 소티리오 불가리는 스펀지 수세미 판매상과 계약을 맺고 자신들의 제품을 상점에 진열하기로 했다. 3년간 착실하게 군자금을 모은 둘은 1884년 로마의 심장부인 시스티나 거리 75번가에 가게를 열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소티리오 불가리와 트미트리오스 크레모스는 함께한 시간이 무색할만큼 서로에게 이별을 고하고 각자의 길을 갔다. 혼자 남은 소티리오 불가리는 멀지 않은 시스티나 거리 85번지로 거점을 옮겼다.
그리스–로마의 유산과 고전에 비잔틴과 중동의 화려한 장식을 더한 소티리오 불가리의 제품은 로마를 찾은 부유한 관광객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소티리오 불가리는 그리스의 장인들을 고용해 독창적인 장식품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성수기를 맞은 여행객을 겨냥하여 스위스 생 모리츠에 임시 매장을 여는 등 사업가로서 탁월한 수완을 발휘했다. 1894년 소티리오 불가리는 세인트 피터 대성당으로 향하는 관광객을 겨냥해 비아 데이 콘도티 28번가에 두 번째 매장을 세웠다. 자신의 이름도 로마식으로 개명하며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주 : Sotorios Voulgaris -> Sotirio Bulgari). 1905년에는 비아 콘도티 10번가에 브랜드의 본산으로 여겨지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개장했다. 소티리오 불가리의 명성은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으로 퍼졌다. 1908년에는 7개의 매장과 2개의 임시 매장을 거느릴 정도로 사세를 넓혔다.
1910년대에 접어들어 소티리오 불가리의 아들인 조르지오와 코스탄티노가 합류하며 불가리는 본격적인 가족 경영 체제로 돌입했다. 이때부터 소티리오 불가리는 은 장식품 대신 형형색색의 화려한 보석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그리스–로마와 비잔틴 등 여러 문화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다양한 소재를 다룬 전문성 덕분에 주얼러로의 변신은 순탄하게 진행됐다. 1932년 75세를 일기로 소티리오 불가리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후손들은 플래그십 스토어를 정비하고 상호를 현재의 표기법인 불가리로 변경하는 등 불가리를 국제적인 브랜드로 성장시키기 위한 토대를 닦았다.
불가리가 시계를 처음 제작한 것은 1920년대로 추정된다. 대칭을 이루는 직선과 곡선을 통해 간결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아르데코 풍의 시계가 불가리의 이름을 달고 등장했다. 이 시기의 불가리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보석으로 치장한 브레이슬릿 형태의 여성 시계와 점핑 아워 메커니즘을 장착한 남성 시계를 선보였다. 이것들은 당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불가리 특유의 디자인 모티프를 담고 있었다.

2025년 신제품 세르펜티 투보가스 오토매틱 워치. 여성용 시계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칼리버 레이디 솔로템포 BVS100(The Lady Solotempo BVS100)를 탑재했다.
불가리가 본격적으로 시계 제작에 뛰어든 것은 세르펜티 컬렉션을 통해서다. 영원불멸한 아이콘이자 불가리의 단일 컬렉션으로는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세르펜티는 하이 주얼리와 워치메이킹을 뱀의 신화적 상징성과 결합시켰다. 여러 문명에서 뱀은 양면성을 지닌 존재로 여겨졌다. 한편에서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자 악의 대변자로, 다른 한편에서는 지혜, 영생, 다산, 의학과 같은 긍정적인 의미를 가졌다. 그렇기에 오래 전부터 뱀을 모티프로 제작한 장신구를 제작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인으로 등장하는 헤르메스는 두 마리의 뱀이 휘감고 있는 지팡이를 들었고, 역시 그리스 신화 속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 역시 뱀이 감싼 지팡이를 갖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는 왕관에 뱀의 상징을 부착했고, 클레오파트라는 뱀을 표현한 장신구로 온몸을 뒤덮었다. 소티리오 불가리 자신이 그리스–로마 문화에 심취했던 데다가 로마를 대표하는 주얼러로 정체성을 확립한 불가리였기에 세르펜티의 등장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1948년에 첫 선을 보인 세르펜티는 투보가스 기법을 적용해 코일처럼 신체를 감싸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유연하게 움직이는 뱀의 몸통 부분은 금이나 스틸로 만들었고, 꼬리와 머리에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보석을 세심하게 박아 넣었다. 이렇게 제작한 세르펜티는 내부 구조를 가린 덕분에 조잡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탄성이 있기 때문에 사용자는 부드럽고 편안한 착용감을 만끽했다. 세르펜티의 잠재력을 꿰뚫어 본 불가리는 뱀의 머리속에 시계를 부착하는 독특한 구조를 고안해 브레이슬릿과 시계를 통합했다. 세르펜티는 지난 수십 년간 꾸준히 진화를 거듭했다. 일부 모델은 뱀의 머리를 다이얼과 케이스가 대신하기도 했고, 몸통의 중간 부분에 시계를 배치하는 경우도 있었다. 시대를 관통하는 유행과 불가리 특유의 감각적인 디자인을 반영해 시계 케이스를 평범한 원이나 사각형에서 기하학적인 형태로도 표현해냈다. 세르펜티가 불가리의 상징처럼 굳어진 데에는 유명인사들의 역할도 컸다. 특히 로마에서 촬영한 1963년작 <클레오파트라>에서 클레오파트라로 분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로마의 불가리 매장에서 세르펜티를 구입했다. 탁월한 안목도 한 몫 했겠지만 클레오파트라를 연기해야 하는 그녀였기에 참으로 시의적절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1970년대는 시계 업계 뿐만 아니라 불가리에게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값싸고 정확한 쿼츠 시계가 기계식 시계를 위협하면서 많은 브랜드가 존망의 기로에 섰다. 생존을 위해 쿼츠 시계로의 전환을 꾀한 브랜드와 전통을 고수하는 브랜드가 공존했다. 시계 시장의 판도는 급격하게 흔들렸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명암이 갈렸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불가리는 독자적인 행보에 나섰다. 1975년 불가리는 가장 중요한 고객 100명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로 손목시계를 준비했다. 로마 시대의 동전을 떠올리게 하는 납작한 골드 케이스의 중앙에는 숫자로 시간을 표시하는 디지털 디스플레이가 있었다. 가장자리에 글자를 적은 로마의 동전처럼 베젤에는 불가리와 로마를 새겨 넣었다. 불가리는 작명에도 크게 힘을 쏟지 않았다. 불가리 로마라는 지극히 상징적이면서도 직관적인 이름을 붙였을 뿐이었다. 불가리의 충성스러운 고객에게만 허락된 이 시계는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다른 고객들의 성화에 못 이겨 불가리는 아날로그 버전의 불가리 로마도 제작했다.
예기치 않은 불가리 로마의 흥행에 고무된 불가리는 빠르게 다음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불가리 로마의 상용화를 추진한 불가리는 불가리 불가리라는 새로운 이름을 시계에 부여했다. 불가리 불가리를 구성하는 알파벳으로 베젤을 빼곡히 채웠고, 전면의 디지털 디스플레이는 전통적인 바늘로 대체했다. 로마의 전통과 유산을 정체성으로 내세운 전작 불가리 로마와 시계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보편적인 시간 표시 방법을 결합하여 단순하지만 강렬한 디자인을 창조했다. 불가리 불가리는 1977년에 출시되자마자 즉각적인 반응을 얻었다. 불가리는 쏟아지는 주문과 수요를 감당하는 동시에 소비자의 요구에도 기민하게 반응했다. 최초의 모델은 지름이 33mm인 옐로우 골드 케이스에 가죽 스트랩을 연결했다. 이후 크기를 23mm, 26mm, 30mm로 분화했고, 스테인리스 스틸로도 케이스를 제작했다. 기계식 무브먼트와 쿼츠 무브먼트를 병용했고, 모델에 따라 날짜 기능을 넣기도 했다. 불가리 불가리는 불가리가 기획한 최초의 정규 남성 시계 컬렉션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와 함께 브랜드 이름 혹은 로고를 디자인에 반영했다는 점도 특기할만하다. 로마의 유산을 활용하는 브랜드의 철학과 특유의 다이얼 및 베젤 디자인은 오늘날까지도 불가리 시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불가리 불가리의 성공은 불가리에게 시계 사업에 대한 확신을 심어줬다. 이에 불가리는 1982년 스위스 뇌샤텔에 불가리 타임이라는 시계 제조 공방을 설립했다. 스위스에 전초기지를 마련한 불가리는 시계에 스위스 메이드 라벨을 붙여 전문성을 강조했다. 불가리가 수직통합형 매뉴팩처로 발돋움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지만 어찌됐든 첫 단추를 끼운 것이었다. 이 시기는 기계식 시계가 반등을 꾀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때였다. 불가리는 컴플리케이션에 치중하며 재도약을 꿈꾸던 기성 브랜드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1988년에는 불가리 최초의 스포츠 워치인 디아고노를 출시했다. 디아고노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경쟁을 뜻하는 아곤(agon)에서 유래했다. 재미 있는 점은 드레스 워치와 스포츠 워치 사이에서 고민했던 1970년대의 럭셔리 스포츠 워치와는 다른 문법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디아고노는 커다란 성공을 가져다준 불가리 불가리의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계승했다. 불가리 불가리처럼 베젤에 더블 네임을 각인했고, 숫자 12를 큼지막하게 처리한 다이얼을 사용했다. 불가리 불가리와의 명확한 차이점은 러그였다. 케이스와 스트랩 또는 브레이슬릿을 이어주는 둥그런 러그는 오직 불가리 시계에서만 볼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호환성을 고려하면 약간은 배타적으로 느껴지지만 불가리 불가리나 디아고노의 정체성을 보다 강하게 만들어준 디자인 요소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1998년 불가리는 알루미늄과 러버라는 당시 시계 업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조합을 들고 나왔다. 티타늄, 세라믹, 브론즈를 사용하는 경우는 간혹 있었으나 알루미늄과 러버는 그다지 관심을 끄는 소재는 아니었다. 값비싼 기계식 시계에 어울리는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이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허나 애초부터 불가리는 전통적인 고급 시계를 지향한 것이 아니었으며, 후발주자이자 도전자로서 기성 브랜드와는 다른 시도가 필요했기에 색다른 소재로 눈을 돌렸던 것이다. 불가리 알루미늄 워치는 디아고노의 디자인을 고스란히 수용했지만 압도적으로 가벼운 무게와 불가리 특유의 스포트 시크 스타일을 앞세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불가리 알루미늄 워치는 대중에게 불가리 시계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불가리는 밀레니엄을 기점으로 도약을 위한 승부수를 던진다. 때마침 고급 시계 시장에는 훈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자생적인 힘만으로는 고급 시계 시장에서 패권을 노리기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불가리는 2000년 싱가폴 기반의 리테일러 아워 글래스로부터 다니엘 로스와 제랄드 젠타를 비롯해 두 브랜드의 제조 시설을 소유한 매뉴팩처 드 오트 오를로제리를 인수한다. 1990년대 말에 터진 아시아 금융 위기로 경영난을 겪은 두 브랜드의 몸값이 낮아진 것이 불가리에게는 호재로 작용했다. 복잡한 기능 위주의 고급 시계를 생산해온 다니엘 로스와 제랄드 젠타를 품에 안은 불가리는 단숨에 시계 전반을 아우르는 노하우와 경험을 손에 넣었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스위스 워치메이킹의 요람인 주 계곡의 르 상티에에 고급 시계 생산을 위한 주요 거점을 마련한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이후로도 불가리는 보다 높은 수준의 수직계열화를 위해 다이얼 전문 제조사 카드랑 디자인, 브레이슬릿 전문 제조사 프레스티지 도르, 케이스 전문 제조사 핑거를 차례대로 인수하며 착실하게 미래를 대비했다.
다니엘 로스와 제랄드 젠타는 불가리에 인수됐지만 불가리의 지원 하에 계속해서 시계를 출시할 수 있었다. 대신 다니엘 로스와 제랄드 젠타가 불가리 컬렉션으로 완전히 흡수된 뒤로는 시계에 불가리의 로고를 넣어야 했다. 이때의 불가리는 실험정신으로 가득한 시계를 대거 출시했다. 2004년에는 불가리 불가리 컬렉션 최초의 복잡 시계 불가리 불가리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을 출시했다. 불가리가 자체 제작한 첫 번째 컴플리케이션이기도 했던 이 시계는 6시 방향에 투르비용이 있었고, 파워리저브가 64시간에 달했다. 불가리 불가리 더블 네임을 채택한 독특한 디자인의 아씨오마나 브랜드 창립 125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창업주를 기리는 의미를 담은 소티리오 불가리가 라인업의 한 축을 담당했다. 특히 소티리오 불가리에는 불가리가 디자인하고 개발한 첫 번째 인하우스 셀프와인딩 칼리버 168을 탑재했다.
2011년은 불가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한 해로 꼽힌다. 다수의 럭셔리 브랜드를 거느린 LVMH 그룹과의 빅딜에 사인한 것이다. LVMH 그룹은 37억 유로에 달하는 거금을 지불하고 불가리를 인수했다. 불가리 가문은 불가리 지분 50.4%를 넘기는 조건으로 LVMH 그룹의 지분 3.5%를 얻었다. 이 거래로 LVMH 그룹은 이탈리아의 가장 중요한 주얼러 가운데 하나를 포트폴리오에 추가했다. 100년 넘게 독립 기업으로 운영된 불가리였지만 LVMH 그룹의 우산 아래로 들어가는 것은 지속적인 발전과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라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불가리는 LVMH 그룹이 보유한 글로벌 네트워크 인프라의 혜택을 누리는 동시에 그룹 내 브랜드간의 비용 분담을 통해 재무 구조를 개선할 수 있었다. LVMH 그룹에 편입된 이후 불가리에게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2012년 불가리는 오늘날 불가리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옥토를 재발매한다. 그전까지 제랄드 젠타 불가리 옥토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던 이 시계는 디자인을 약간 수정하고 이름을 간결하게 옥토로 변경했다. 옥토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 옥토 오리지날은 복잡한 기능을 내세우던 제랄드 젠타 불가리 옥토와는 달리 3개의 바늘을 가진 단순한 시계였다. 하지만 단순한 것이 오히려 옥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는데 도움이 됐다. 옥토의 팔각형 케이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건축 스케치, 판테온이나 바실리카 막센티우스 같은 옛 로마 시대의 건축물에서 활용한 팔각형 모티프에서 착안했다. 곡선과 직선의 절묘한 교차와 무려 110개나 되는 면이 만들어내는 입체적 케이스는 종래의 규칙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무브먼트는 이전의 칼리버 168을 개량한 칼리버 193으로 변경했다. 이듬해에는 가죽 스트랩 대신 브레이슬릿을 연결한 옥토 스틸을 발매했다. 기하학적인 케이스를 더욱 부각시키는 브레이슬릿은 옥토의 성격이 드레스 워치와 스포츠 워치 어느 쪽에도 규정되지 않음을 보여줬다.
옥토는 이후 옥토 로마나 옥토 피니씨모 S로 분화됐다. 특히 옥토 로마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를 띄는 옥토 피니씨모와 달리 일반적인 러그를 가진 보통의 시계와 유사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옥토 피니씨모보다 면을 줄이고 형태를 단순하게 가다듬어 차별화를 노렸다. 옥토 로마는 옥토 피니씨모와 비교하면 조금 더 크고 두껍다. 이로 인해 스포티하고 활력이 넘쳐 보인다. 방수 성능도 100m로 웬만한 레저 및 스포츠는 무리 없이 즐길 수 있을 정도다. 스트랩과 브레이슬릿을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는 퀵 체인지 시스템까지 갖춰 활용도가 높다. 가격도 옥토 피니씨모보다는 훨씬 더 저렴하기 때문에 불가리의 아이콘을 접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매력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옥토의 재탄생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옥토의 재탄생은 불가리가 워치메이킹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다가올 옥토 피니씨모 사가(Saga)의 개막을 알린 전초전이었다.
2014년 창립 130주년을 맞이한 불가리는 출사표를 던졌다. 옥토에서 파생된 옥토 피니씨모를 선보이며 울트라씬 정복을 향한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피니씨모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불가리는 시계를 얇게 만드는데 모든 역량을 투입한다. 포문을 연 것은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이었다. 시작부터 대담하기 그지없었다. 기실 투르비용을 울트라씬에 접목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밸런스와 이스케이프먼트를 담는 투르비용 케이지는 시계를 두껍게 만드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또한, 충격에 약하기 때문에 충분한 내구성을 갖춰야 하는 투르비용을 가녀린 울트라씬에 장착하는 것은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고정관념에도 불구하고 불가리는 두께가 1.95mm에 불과한 울트라씬 칼리버 BVL 268을 만들었다. 심지어 이 무브먼트를 두께 5mm의 케이스에 집어넣고 말았다.
무브먼트를 얇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브먼트의 지름을 늘리는 것이다. 부품을 넓게 퍼트려 배치하면 두께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시계의 지름이 커지는 부작용을 야기한다. 옥토의 우아함을 훼손하지 않고 싶었던 불가리는 다른 해결책을 고안했다. 톱니바퀴의 축을 고정하기 위해 쓰이는 보석을 없애고 나사로 고정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은 보통의 시계보다 사용된 보석의 수가 적은 것이 특징이다. 배럴은 3개의 볼 베어링을 이용해 회전시켰다. 이렇게 하면 배럴 브리지가 필요하지 않아 두께를 줄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투르비용의 축에 놓인 피니언을 기어트레인의 3번 톱니바퀴에 연결해서 구동하는 전통적인 방식 대신 바깥쪽에 톱니를 새긴 투르비용 케이지를 직접 회전시켰다. 이로써 불가리는 양립하기 어려운 울트라씬과 투르비용을 하나로 묶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칼리버 BVL 268은 가장 얇은 투르비용 무브먼트로 등극했다.
불가리는 여세를 몰아 2년 뒤인 2016년 옥토 피니씨모 미니트 리피터로 두 번째 세계 신기록을 세운다. 가장 얇은 미니트 리피터 시계로 이름을 남긴 이 시계의 케이스 두께는 6.95mm였다. 투르비용보다 두꺼워졌지만 묘한 생김새의 랙이나 두께를 증가시키는 갖가지 휠이 필요한 미니트 리피터 시계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핸드와인딩 칼리버 BVL 362의 두께는 고작 3.12mm다. 소리를 내는데 필요한 부품의 두께를 극단적으로 얇게 제작하는 동시에 타종 시간을 조절하는 거버너의 브리지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설계했다. 차이밍 워치의 덕목은 뭐니뭐니 해도 소리다. 소리는 크고 아름다워야 한다. 불가리는 소리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밀도가 높은 티타늄으로 케이스를 제작했다. 당시만해도 티타늄을 선호하는 브랜드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티타늄은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골드보다 다루기 어려워 옥토처럼 복잡한 케이스를 제작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가리는 미니트 리피터의 본질을 놓치지 않기 위해 티타늄을 선택했다.
이후 옥토 피니씨모는 티타늄 케이스로 자주 선보이게 된다. 얇으면서도 튼튼해야 하는 옥토 피니씨모의 성격을 보완하려면 가볍지만 단단한 성질을 지닌 티타늄이 적임이었기 때문이다. 옥토 피니씨모 미니트 리피터는 케이스에 이어 다이얼도 티타늄으로 만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인덱스를 부착하지 않고 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소리를 가능한 한 크게 증폭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이 시계는 차이밍 워치는 방수에 취약하다는 선입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방수 성능이 50m나 됐다. 많은 미니트 리피터 시계가 방수가 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다. 비결은 미니트 리피터를 작동시키는 버튼에 있다. 슬라이딩 버튼을 사용하는 보통의 미니트 리피터와 다르게 옥토 피니씨모 미니트 리피터는 크로노그래프 버튼처럼 누르는 푸시 버튼을 채용해 문제점을 극복했다.
세 번째로 종전 기록을 갈아치운 시계는 2017년에 출시한 옥토 피니씨모 오토매틱이었다. 아쉽게도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지만 케이스 두께가 5.15mm에 그치는 오토매틱 시계는 분명 획기적인 것이었다. 앞선 두 제품은 컴플리케이션이었던 것과 달리 정돈된 심플 워치를 들고 나오며 한숨을 돌리는 듯했지만 울트라씬의 기본으로 돌아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시계 안에는 셀프와인딩 칼리버 BVL 128을 개량한 BVL 138이 들어갔다.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를 삭제하고 그 자리에 마이크로 로터를 집어넣은 칼리버 BVL 138의 지름은 2.23mm에 불과했지만 지름은 36.6mm로 큰 편이었다. 여기에는 수직 공간을 포기하는 대신 수평 공간을 확보하여 부품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겠다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덕분에 스몰 세컨즈를 다이얼의 7시30분 방향으로 옮길 수 있었는데 아라비아 숫자 6과 12를 강조하는 불가리만의 디자인 코드를 훼손하지 않을 수 있었다. 옥토 피니씨모 오토매틱은 전작인 옥토 피니씨모 미니트 리피터와 마찬가지로 케이스를 티타늄으로 제작했다. 이에 더해 티타늄 브레이슬릿 옵션을 추가해 옥토 피니씨모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를 완성했다.
세 번째 기록을 세운지 1년만에 선보인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 오토매틱은 불가리에게 새로운 트로피를 안겨줬다. 2014년작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이 핸드와인딩이었다면 이 제품은 셀프와인딩이었다. 로터를 포함해 로터와 배럴을 연결하는 여러 부품이 필요한 오토매틱 메커니즘은 필연적으로 시계를 두껍게 만든다. 허나 불가리는 이러한 상식마저 철저히 깨 부셨다.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 오토매틱의 두께는 3.95mm였다. 오토매틱 시계임에도 불구하고 4년전에 출시한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보다 두께가 1.05mm나 얇았다(대신 지름은 40mm에서 42mm로 2mm 증가했다). 재미 있는 점은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에 장착한 칼리버 BVL 268과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 오토매틱에 실린 칼리버 BVL 288의 두께가 1.95mm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칼리버 BVL 288은 칼리버 BVL 268의 레이아웃을 답습했다. 톱니바퀴와 배럴을 고정하는 방식도, 투르비용을 회전시키는 원리도 같다. 레이아웃과 디자인도 그대로다. 눈에 띄는 차이점이라면 크라운 아래에 있는 버튼이다. 이 버튼을 누르면 크라운을 뽑지 않고도 와인딩과 시간 조정을 번갈아 가며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두께를 늘리지 않고 오토매틱 메커니즘에 필요한 부품을 어떻게 추가한 것일까? 답은 페리퍼럴 로터에 있다. 페리퍼럴 방식은 로터가 무브먼트의 가장자리를 돌도록 설계한다. 이렇게 하면 배럴과 로터를 이어주는 부품을 수평으로 배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무브먼트의 두께를 늘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페리퍼럴 방식은 무브먼트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이점도 있다.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 오토매틱은 세계에서 가장 얇은 셀프와인딩 시계와 세계에서 가장 얇은 투르비용 시계라는 두 가지 호칭을 동시에 얻었다.
또 다시 1년만에 불가리는 옥토 피니씨모 크로노그래프 GMT 오토매틱으로 세계에서 가장 얇은 크로노그래프 시계를 만들어냈다. 케이스 지름은 42mm로 작지 않고 두께도 6.9mm로 큰 편이다.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씬 시리즈 가운데 가장 크다. 허나 이 시계가 크로노그래프와 GMT 기능을 갖춘 셀프와인딩 무브먼트로 구동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크로노그래프 구동 방식은 고전적인 캐링 암 방식의 수평 클러치를 따랐다. 플레이트에 뚫은 작은 구멍을 통해 칼럼 휠이 모습을 드러낸다. 크로노그래프 구동과 관련된 대부분의 부품은 플레이트에 가려져 시각적인 유희는 다소 떨어지지만 얇은 두께라는 대의명분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아쉬움은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시계도 바로 직전의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 오토매틱처럼 두께를 줄이기 위해 페리퍼럴 로터를 채택했다. 이를 통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씬 시리즈는 전작에서 부족했던 점이나 개선을 통해 발전할 여지가 있을 경우 이를 다음 제품에 적극 반영한다는 것이다. 케이스 소재를 플래티넘에서 티타늄으로 변경한 것이나 페리퍼럴 로터를 재사용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단순히 기록을 수립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이고 워치메이킹의 수준을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불가리가 어떤 자세로 게임에 임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2020년의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 크로노그래프 스켈레톤 오토매틱은 옥토 피니씨모 시리즈 최초로 복수의 컴플리케이션을 결합한 시계였다. 보는 입장에서는 전작인 옥토 피니씨모 크로노그래프 GMT에서 GMT 기능을 투르비용으로 대체했다고 단순하게 치부할 수도 있으나 제작의 관점에서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 어찌됐든 투르비용은 무브먼트를 두껍게 만드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옥토 피니씨모 크로노그래프 GMT에 들어간 칼리버 BVL 318의 두께는 3.3mm였다.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 크로노그래프 스켈레톤은 투르비용을 추가하고도 두께를 3.5mm로 제한했다. 겨우 0.2mm가 두꺼워진 것이다. 케이스 두께는 7.4mm로 일반적인 투르비용 혹은 크로노그래프 시계를 생각하면 얇은 수치다. 이 시계에는 푸시 버튼이 2개가 있는데 하나는 크로노그래프의 모든 동작(스타트, 스톱, 리셋)을 관장한다. 나머지 하나는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 오토매틱과 마찬가지로 와인딩과 시간 조정을 선택할 수 있는 셀렉터에 해당한다.
2021년 불가리는 또 다른 컴플리케이션인 퍼페추얼 캘린더를 울트라씬으로 구현했다. 공인된 것은 아니지만 통상 컴플리케이션으로 여겨지는 것은 투르비용, 크로노그래프, 스플릿 세컨드, 차이밍, 퍼페추얼 캘린더, 울트라씬 정도다. 불가리는 옥토 피니씨모 퍼페추얼 캘린더를 통해 모든 울트라씬 컴플리케이션을 정복하겠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독특한 레이아웃을 갖춘 다이얼은 얇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적절히 구획하여 정보를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날짜 및 윤년 디스플레이를 레트로그레이드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시계에는 두 개의 스네일 캠이 들어간다. 하나는 다이얼 아래에 숨어 있어 볼 수 없지만 나머지 하나는 무브먼트 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티타늄으로 제작한 케이스의 두께는 5.8mm에 불과하다. 얇은 두께의 1등 공신은 두말할 필요 없이 무브먼트다.
칼리버 BVL 305는 옥토 피니씨모 오토매틱에 사용한 칼리버 BVL 138에 퍼페추얼 캘린더 메커니즘을 추가한 변종이다. 칼리버 BVL 138의 두께는 2.23mm, 칼리버 BVL 305의 두께는 2.75mm로 두 무브먼트의 두께 차이는 겨우 0.52mm에 지나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0.52mm의 공간으로 퍼페추얼 캘린더라는 복잡 기능을 구현한 것이다. 이는 무브먼트의 여백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불가리의 도전 정신에 감화된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PHG)는 옥토 피니씨모 퍼페추얼 캘린더에게 대상에 해당하는 에귀유 도르를 선사했다. 그렇게 불가리 울트라씬의 이야기는 끝나는 듯했다.
불가리가 옥토 피니씨모를 통해 10년도 되지 않은 짧은 기간 동안 울트라씬을 테마로 7개의 신기록을 세운 것은 분명 놀랄 만한 일이다. 허나 불가리에게는 마지막으로 완수해야 하는 과업이 남아 있었다. 울트라씬의 근원적 의미와 순수한 가치를 되새기는 것이었다. 불가리는 옥토의 재탄생 10주년을 맞아 답을 내놓았으니 이름하여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였다. 울트라라는 명칭이 모든 것을 말해주듯 이 시계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시계로 등재됐다.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의 케이스 두께는 보고도 믿기지 않는 1.8mm. 시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얇아지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제작 방식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해야 한다. 불가리는 케이스와 무브먼트의 경계를 없앴다. 케이스백이 무브먼트의 플레이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시간을 표시하는 바늘을 멀찌감치 떨어뜨린 것도 두께를 줄이는데 주효했다. 보통 시침과 분침은 같은 축에 놓인다. 기어트레인의 센터 휠에서 동력을 전달받은 캐넌 피니언에 분침을 장착하고, 그 위에 설치한 아워 휠에 시침을 연결한다. 이 같은 구조는 시간을 읽기 수월하고 디자인이 보편적이라 거부감이 없지만 무브먼트의 두께는 어쩔 수 없이 증가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가리는 시간과 분을 위한 다이얼을 분리시켰다. 이렇게 하면 두 개의 바늘을 같은 층에 설치할 수 있어 두께가 늘어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다른 이야기지만 이 시계는 초까지 확인할 수 있다. 두께를 줄이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는 울트라씬 시계에서 초침은 우선 제거 대상으로 분류된다.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는 1분에 1회전하는 기어트레인의 다섯 번째 톱니바퀴에 숫자와 인덱스를 적어 초를 표시한다. 두께를 줄이기 위한 마지막 노력은 크라운에 있다. 정면에서 바라본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에서는 크라운을 찾을 수가 없다. 크라운이 케이스백에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크라운의 개수는 2개다. 하나는 와인딩을, 다른 하나는 시간을 맞추기 위한 것이다. 크라운의 수직 활동으로 생성된 에너지를 수평으로 놓인 톱니바퀴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와인딩 피니언, 크라운 휠, 슬라이딩 클러치 같은 부품이 필요하다. 불가리는 키리스 워크의 핵심이지만 시계를 두껍게 하는 이 부품들을 없애고 모든 부품이 수평으로 움직이도록 설계했다. 이전에도 크라운을 케이스백으로 이동시킨 사례는 간혹 있었지만 울트라씬 제작의 관점에서 철저히 두께를 줄이려는 심산으로 크라운의 위치를 옮긴 것은 불가리를 포함하여 극소수에 불과하다.
두께가 얇으면 시계의 내구성은 줄어드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불가리도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몇몇 사항을 울트라씬 시계에 맞춰 조절했다. 베젤과 미들 케이스의 소재는 전과 마찬가지로 티타늄이지만 무브먼트 플레이트를 겸하는 케이스백은 텅스텐 카바이드로 만들었다. 스테인리스 스틸보다 2배 정도 단단한 텅스텐 카바이드는 금속을 연마하는 도구의 소재로 쓰인다. 이런 텅스텐 카바이드로 옥토 피니씨모의 케이스를 만드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레이저 가공으로 정교한 케이스백을 완성하는데 성공했다. 케이스 두께를 고려하면 방수는 언감생심이다. 그럼에도 케이스 사이에 개스킷을 넣어 10m의 방수 성능을 보장한다. 이 시계가 사용자를 배려하고 실제 착용을 상정해서 제작한 시계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두께 1.5mm의 초박형 칼리버 BVL 180 개발에는 무브먼트 제조사 컨셉토 워치 팩토리가 참여했다. 파워리저브는 50시간으로 제법 긴 편이며, 원하는 두께를 얻기 위해 밸런스와 이스케이프먼트를 모듈화했다. 이 시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QR 코드를 새긴 래칫 휠이다. QR 코드를 스캔하면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와 관련된 여러 컨텐츠를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시계의 소유권을 보장하는 NFT 아트워크와도 연관되어 있다. 메타버스와의 연동을 통해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일 뿐만 아니라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시계라는 유래 없는 정체성을 갖게 됐다.
울트라씬 경쟁이 격해지면서 세계에서 가장 얇은 시계였던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는 왕좌에서 내려왔다. 허나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24년 불가리는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COSC를 통해 다시 한 번 정점에 도달했다.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COSC의 두께는 1.7mm로 전작인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보다 0.1mm 더 얇다. 이 차이로 인해 아쉽지만 방수는 포기해야 했다. 구성은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와 대동소이하나 두께를 조금 더 줄이기 위해 베젤과 사파이어 크리스털의 두께를 미세하게 조정했다. 래칫 휠에 새겨진 QR 코드는 케이스백으로 이동했고, 레이저로 새긴 패턴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두께를 줄이려는 각고의 노력만이 이 시계의 전부는 아니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얇게 무브먼트를 제작하고도 COSC 인증을 받을 만큼 정확성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크로노미터가 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하는 것이 많다. 메인스프링의 토크나 온도 변화 등 여러 변수로 인한 가변적인 성능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크로노미터는 충분한 직경의 밸런스 휠, 안정적인 에너지 전달 등을 요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오버코일 밸런스 스프링이나 특별한 메커니즘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울트라씬 시계를 만드는데 불리하게 작용한다. 불가리는 넉넉한 길이의 메인스프링을 담기 위해 최대한 큰 배럴을 적용했다. 파워리저브를 가능한 한 늘려 토크가 일정한 구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위해 베젤의 디자인을 배럴에 맞춰 잘라냈다. 이론적으로 등시성 측면에서 유리한 프리스프렁 밸런스를 채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밸런스와 이스케이프먼트도 보통의 시계보다 훨씬 더 엄격한 규정을 따라 정밀하게 조정됐으며, 허용 오차도 작다. 15일 동안 행해지는 COSC 테스트를 이 시계가 통과했다는 것은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일이나 불가리는 그것을 가능케 했다.
옥토 피니씨모를 통해 불가리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울트라씬 전문가로 새로이 정립했으며, 기존의 규율이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자신들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길고 길었던 옥토 피니씨모 사가는 일단락되었다. 물론 이것이 불가리 워치메이킹의 마지막은 아니다. 여정의 끝에서 새로운 여정이 시작하는 것을 우리는 옥토 피니씨모를 통해 똑똑히 목도했기 때문이다.
1857 창업주 소티리오 불가리 출생
1881 이탈리아 로마 트리니타 데이 몬티에서 은 세공품 판매
1884 시스티나 85번가에 첫 번째 매장을 열다
1894 비아 데이 콘도티 28번가에 새로운 매장을 열다
1905 비아 데이 콘도티 10번가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다
1932 소티리오 불가리 타계. 아들인 조르지오와 코스탄티노가 사업을 이어받음
1934 불가리(BVLGARI)로 상호 변경
1948 세르펜티 출시
1960년대 소티리오 불가리의 손자인 지아니, 파올로, 니콜라가 불가리를 운영하기 시작. 그리스–로마의 클래식, 이탈리아 르네상스, 19세기 로마의 금세공에서 영감을 얻어 독자적인 스타일 완성
1970년대 뉴욕, 제네바, 몬테카를로, 파리에 불가리 매장을 열며 세계로 진출
1975 불가리 로마 출시
1977 불가리 불가리 출시
1982 불가리 타임 설립
1984 조르지오 불가리의 아들 파올로와 니콜라가 불가리 회장과 부회장으로 취임. 조카 프란체스코 트라파니가 CEO를 역임
1988 디아고노 출시
1995 밀라노 증권 거래소에 상장
1998 알루미늄 워치 출시
2000 다니엘 로스, 제랄드 젠타, 매뉴팩처 드 오뜨 오를로제리 인수. 다니엘 로스 & 제랄드 젠타 오뜨 오를로제리 설립
2005 다이얼 제조사 카드랑 디자인, 브레이슬릿 제조사 프레스티지 도르 인수
2007 케이스 제조사 핑거 인수
2009 소티리오 불가리 출시
2010 다니엘 로스와 제랄드 젠타를 불가리 브랜드로 통합
2011 LVMH 불가리 인수
2012 옥토 오리지날 출시
2013 장–크리스토프 바뱅 매니징 디렉터 부임
2014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 출시
2014 루체아 출시
2016 옥토 피니씨모 미니트 리피터 출시
2017 옥토 피니씨모 오토매틱 출시
2017 옥토 로마 출시
2018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 오토매틱 출시
2019 옥토 피니씨모 크로노그래프 GMT 오토매틱 출시
2019 세르펜티 세두토리 출시
2020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 크로노그래프 스켈레톤 오토매틱 출시
2020 주얼리 매뉴팩처 발렌자 개관
2021 옥토 피니씨모 퍼페추얼 캘린더 출시
2022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출시
2024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COSC 출시
2025 칼리버 레이디 솔로템포 BVS100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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