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민 스트롬 창립자 세르주 미셸 인터뷰
아르민 스트롬 한국 쇼케이스를 기념해 창립자 세르주 미셸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 이상우
- 2025.03.24

클로카는 아르민 스트롬(Armin Strom) 한국 쇼케이스에 앞서 브랜드의 창립자 세르주 미셸(Serge Michel)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린 시절부터 시계 제작·수집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어릴 적 친구인 클로드 그라이슬러와 함께 아르민 스트롬을 공동 설립했다. 그에게 아르민 스트롬의 설립과 주요 제품 관련 이야기, 그리고 독립 워치메이킹에 대해 들어보았다.
아르민 스트롬은 가족 같은 오랜 친구였다. 나는 아르민 스트롬이 독특한 스켈레톤 시계를 제작하던 부르크도르프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의 가게를 자주 지나쳤고, 아버지와 함께 매장 앞에서 매혹적인 시계를 바라보곤 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아르민 스트롬의 시계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는데, 아마 그날이 그를 처음 만난 날로 기억한다. 이후로 가족 간의 우정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흘러 2006년 아르민 스트롬이 은퇴를 앞두고 있을 때 브랜드를 인수하자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나는 멋진 아이디어이자 매우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아르민 스트롬과 두 명의 시계 장인이 연간 10~15개 정도를 생산하며 독특한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2008년 브랜드를 인수하면서 이런 수공예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무브먼트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매뉴팩처로 전환하기로 했다.
나는 1980~1990년대에 유년 시절을 보냈는데, 이 시기는 스와치 시계의 전성기였다. 적어도 내 또래 아이들에게는 그랬다. 나는 ‘스와치 컬렉터스 클럽’의 첫 번째 회원 중 한 명이었고, 나중에 아버지의 열정 덕분에 기계식 시계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원 위크’는 2010년 처음 선보인 인하우스 칼리버 모델이다. 첫 모델을 기획할 때 나는 오토매틱 와인딩 무브먼트를 원했고, 클로드는 수동 와인딩 무브먼트로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 과정에서 결국 우리는 롱 파워 리저브 무브먼트로 타협했다. 최근에는 이 컬렉션을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출시하기도 했다.
레조낭스는 아르민 스트롬의 완벽한 컴플리케이션이다. 혁신과 다이얼 사이드 메커니즘이 결합되어 있으며, 클러치 스프링이 앞뒤로 움직이는 놀라운 광경을 선사한다. 그동안 연구한 바에 따르면 시간의 일관성 측면에서 레조낭스는 분명한 이점이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공명의 동기화가 안정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공명 상태가 왔다 갔다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특별히 ‘클러치 스프링’을 개발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르민 스트롬은 ‘투명한 역학’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는 모든 컬렉션을 관통하는 DNA 코드다. 다른 브랜드에서 스켈레톤 시계는 라인의 확장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르민 스트롬은 새로운 무브먼트를 디자인할 때 컴플리케이션의 혁신성뿐만 아니라 미적으로도 뛰어나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즉 우리의 디자인 프로세스는 처음부터 ‘아름다운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하며, 그래서 무브먼트를 다이얼 뒤에 숨기지 않는다.
이 놀라운 성과는 R&D부터 기계 가공, 장식, 그리고 조립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의 헌신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아르민 스트롬의 모든 직원들이 매우 자랑스럽다. 훌륭한 팀워크 덕분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스위스는 4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다. 스위스 시계 산업의 대부분은 프랑스어권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반면 아르민 스트롬은 예전부터 독일어권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당연히 문화적 측면에서도 프랑스보다 독일에 더 가깝다. 독일은 항상 자동차를 비롯한 고품질의 제품과 디터 람스(Dieter Rams) 같은 산업 디자인으로 유명했다. 이는 아르민 스트롬이라는 브랜드의 뿌리이기도 하다.
시스템 78 컬렉션의 철학은 높은 수준의 독립 워치메이킹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78’은 클로드와 내가 태어난 ‘1978년’을 의미한다. 아르민 스트롬 이전의 삶을 돌아보며 스위스 하이엔드 시계를 꿈꿨지만 이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시절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 컬렉션에서는 합리적인 가격에 높은 수준의 독립적인 시계 제작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비티 이퀄 포스는 상단의 스프링과 하단의 스프링을 차단하여 최적의 토크만 사용하도록 유도한다.
시계 업계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부르크도르프를 떠나기로 결정했고, 그 과정에서 비엘을 선택했다. 부르크도르프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 여전히 스위스의 독일 지역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또 특정 공급업체와 가까워야 했기 때문에 시계 도시에 있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했다.
사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자랑스럽다. 개인적으로 무브먼트 장식에 큰 열정을 가지고 있다. 수작업 마감에 있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이를 담당하는 직원들의 헌신은 놀라울 정도다. 예를 들어 연마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작은 나무 막대기를 사용한다. 이 나무는 ‘용담나무’라는 것인데, 워치메이커들이 주말에 쥐라 산맥에 직접 자르러 간다. 더욱 완벽한 결과물을 얻기 위해 직접 이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혁신이 포함될 때만 새로운 칼리버를 선보인다는 게 우리의 철학이다. 또한 ‘투명한 역학’에 대한 열정으로 신뢰성과 정확성뿐만 아니라 미적 측면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팀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50여 명으로 구성된 팀이 완벽한 시계를 만든다는 동일한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아르민 스트롬이라는 브랜드는 제품에 있어서 투명할 뿐만 아니라 정직하고 투명한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우리는 시장 상황에 따라 전략을 조정하지 않는다. 500개 미만의 시계를 생산하는 우리의 생산 능력은 여전히 수요에 비해 낮다. 우리는 계속해서 더 많은 재능 있는 워치메이커를 찾고 있다. 내가 아르민 스트롬의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외부의 압박을 받지 않고 천천히 단계적으로 성장하는 중이다.
한국에서 워치메이킹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열정이 있으면 보통 교육과 지식이 뒤따른다. 아르민 스트롬은 이러한 모든 요소가 필요한 제품이며,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서 열정적인 수집가들을 많이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특히 리테일 파트너인 ‘컬렉터스 하우스’는 우리의 철학을 공유하는 완벽한 파트너다.
물론 아직 창조해야 할 것이 더 많으며 앞으로 보다 많은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의 창의성을 하나의 성과로 제한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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